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발레리우스 세베루스 (문단 편집) === 폐위 === 306년 10월, 로마에서 전임황제인 [[막시미아누스]]의 아들 [[막센티우스]]가 여기에 격분하여[* 막시미아누스는 서방정제로만 286~305로 20년 가까이 있었고, 자기는 그 적자이지만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비해 콘스탄티우스 1세 클로루스는 그 20년 내내 아버지의 부하인 부제였고, 정제는 꼴랑 1년 하고 죽었는데(그것마저도 막시미아누스가 죽은 것도 아니었고, 자의로 물러나고 싶지도 않았는데, 디오클레티아누스가 물귀신마냥 같이 용퇴하자고 하니까 어쩔 수 없이 내려간 결과인데) 그의 서자[* 정략결혼이었지만 어쨌든 그의 어머니인 [[플라비아 율리아 헬레나]]를 버렸으니까.]인 콘스탄티누스는 그 1년 사이에 아버지 군대 안에서 뒷공작과 [[큰 그림]]을 그려 추대받아서, 먼저 정제로 흥정을 했고 결국 정제는 아니지만 부제를 받아냈으니까. 빡치려면 빡칠 만 하다. 4두정치에 내재된 문제점이 이것이다.] [[SPQR|원로원과 일반 시민]][* 원로원 의원들에게는, 정제 및 부제위를 장군, 총독들끼리만 주거니 받거니 하니까. 시민들에게는, [[디오클레티아누스]] 문서에 써 있지만,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이탈리아를 본국의 위치에서 격하시켜 일반 속주와 동등하게 했고, 면제되던 세금도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거기서도 로마 시는 예외라 계속 면세의 특권이 남아 있었는데, 갑자기 정부(발레리우스 세베루스)가 로마 시에서마저도 특권을 폐지해 세금을 걷으려는 소문이 났다고 한다.] 그리고 근위대([[프라이토리아니]])의 정책적 불만[* 프라이토리아니의 로마 시내 주둔기지를 정리하는 작업도 디오클레티아누스 이래로 계속 차근차근 시행되고 있었다.]을 이용해 반란을 일으키자([[사두정의 내전]]), 이를 진압하기 위해 로마로 진격했으나 패배하고 [[라벤나]]로 퇴각했다.(307년 2월) 이후 라벤나의 요새를 함락시키기 어렵다고 판단한 막시미아누스의 계략에 속아, 원래는 제대로 대우받기로 약속을 받고 항복했지만 포로가 되어 307년 9월 16일 처형당했다. [[분류:로마 제국 집정관]][[분류:로마 황제]][[분류:사두정치]][[분류:4세기 집정관]][[분류:퇴위한 군주]][[분류:307년 사망]][[분류:로마 제국의 고대 로마 다신교 신자]]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